딱 일년이다.
작년에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뱅기표 끊어서 한국 들어간 날이.
정말 엄마를 생각하면 넘치는 은혜와 감사다.
일년전 병원에서 만난 엄마는 정말 기가 막혔다.
오른쪽을 전혀 사용하지도 못했을뿐만 아니라 사람을 알아보는지도 불분명했고.....
수술후 엄마는 더 기가 막혔다.
출혈 부위가 애매하게 깊은 곳이라 구멍을 뚫지 못하고 뇌를 절개 해야 했고.
중환자 실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란.
눈의 촛점도 없고, 사람도 못알아보고.
그저 숨만 쉬고 잇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츌혈부위가 중추신경을 건드려 소변 대변 감각을 잃었다.
당근 인지능력도 잃고.
오른쪽 운동신경도.
갈길이 멀었다.
하지만 삼개월이면 회복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수술은 잘되었다는 의사의 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왔고 여전히 소변과 대변은 안되서 호스를 꽂아 받아냈고.
두시간 마다 엄마를 돌렸고.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들락거렸고.
식사를 못해 들어가는 링거가 엄마의 혈당을 올려 인슐린을 맞아야 했고.
아침마다 피검사.
혈관이 터지고 더이상 자리가 없어 여기저기를 계속 찔러대고.
맨정신이 였으면 견딜수 없었을 거다.
삼일에 한번씩 링거 바늘을 이쪽 팔에서 다른팔로 옮겨야 했고.
소변줄로 인해 염증이 생겨 독한 항생제와 주사를 맞아야 했고.
코로 음식을 넣어야 해서 코줄을 늘 끼워 놓고 있었는데 무의식중에 자꾸 빼서 다시 또 꽂아야 했고.
말도 못하고 아무 표현도 못하지만 뭔가 싫은게 있으면 강력히 저항을 하는 본능적인 모습만 남아 있던 엄마였다.
근데 조끔씩 사람을 알아보고 혼자 일어나려 하고.
그러다 의자에 벽을 기대서 앉고.
침대 등을 세우고 앉고.
휠체어에 앉아 병원을 돌고.
빨대에 우유를 꽂아 빨아 마시고.
식사를 시작하고 링거를 빼고.
활짝웃고.
손가락을 움직이고,팔을 움직이고.
발가락을 움직이고, 발목을 움직이고.
손과 발에 힘이 생기고. 잡아 당기고.
혼자서 양치질을 하고.
엄마는 허리를 펴는 수술을 했기때문에 허리를 25도 이상 구부리면 안된다.
그러면 허리를 펴기 위해 박아놓은 심이 부러질수 있기 때문이다.
누울때도 옆으로 누웠다가 돌아서 바로 누워야 하면 일어날떄도 허리를 바로 접어 일어나면 절대로 안된다.
그래서 재활 운동 치료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사실 병원에서 허리에 박은 심이 부러질까봐 세브란스 재활과 의사가 많이 꺼려하고 자꾸 미뤘다.
하루 일분 일초가 중요한 시기였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만 그만큼 빨리 회복될 확률이 높은거였다.
근데 계속 이핑계저핑게만대고 미루고 겨우 운동치료 하나만 늦게 시작히게 해줬다
링거를 달고 있으면 할수가 없다는둥.
치료사들이 싫어한다는둥.
허리 수술한 병원가서 서류를 더 해오라는둥.
감사하게도 운동사료사 분은 정말 기쁨이 넘치는 분이었다.
은혜가 넘치고 감사 한 분이라 그 좋은 감사와 은혜가 엄마에게도 충분히 전해 졌으리라.
링거를 다떼고 말도 어느정도 할수 있기도 훨 전에
끊임없이 우리 두 딸은 번갈아 엄마옆에 붙어 말을 시키고 기도를 하며 찬송을 부르고 함께 율동을 했다.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있는 엄마의 기억을 끌어내기 위해서.
맞았다.
엄만 기억을 해 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찬송을 부르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
우린 재활 전문 병원을 찾았다.
세상에나.
참으로 많은 재활 전문병원겸 요양원이 있었다.
허걱.
너무나 열악한 환경. 어떤곳은 끔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용소 같다는 느낌이 더 들던 곳도 있었으니까.
일하는 간호사와 치료사들의 표정이 죽어 있었다.
밝지가 않았다.
환자들도 그러니 당연히 모두가 그랬고.
맘이 넘 아팠다.
아픈것도 서러운데.
드뎌 한군데를 찾았다.
옮기기로 결정.
그중 산밑이라 공기도 좋고 환경도 좋고 간호사들과 치료사들이 넘 밝았다.
옯기고 나니 이병원 간호사들이 문제가 많았다.
엄마의 약을 빼놓고 주고 엉뚱한걸 주고. 실수가 잦았다.
약을 꼼꼼히 챙기지 않았으면 몰랐으리라.
이인실에 있었는데 옆 할머니 간병인도 간호사들이 약을 한번은 다른 사람 약을 줬다고.
큰일날 사람들.
이인실 돈은 왕창 받으면서 세상에 소파도 하나없는 병실이었다.
환경을 좋고 잘해놨는데 주먹구구 식이었다.
항의하고 항의해서 소파도 나중에 받고. ㅎㅎㅎㅎㅎ
그게 한달 정도 세브란스에 있고서다.
그리곤 두달을 재활병원에 있었다.
언어치료 운동치료를 받으며.
여전히 소변을 스스로 느낌이 없어 못봐서 우리가 일회용 소변빼는 호스를 사용해서 받아내고 있었고.
대변은 거의 짜내다 시피 하고 있었다.
우린 엄마와 정말 좋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각종 퍼즐과 어린애들 책, 소꿉놀이 , 과일 짝맞추기, 블록 쌓기 등등 많은 애들 교구들을 준비했고.
끊임없이 함께 기도 하고 찬양하고 율동하고. 공부하고
어느날 글을 다시 쓰게 되고 성경을 다시 읽게 되고.
첨엔 이줄저줄 넘나들면서 읽었었다.
글씨도 작게 썼다 크게썼다.
하지만 이제 어디냐고. 감사다감사.
그러다 어느날 쌰워후 혼자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고.
혼자서 몇발작 걷고.
비자를 받지 않고 급하게 들어온 나라 삼개월이상을 있으려면 타국에 나가서 비자를 받아와야했다.
혼자서 밥을 먹고. 살짝 붙잡고 걸을수 있고. 소변도 이젠 느낌이 돌아와 혼자서 하고.
일회용 호스도 더이상 사용 안해도 되었다.
읽고 말하고 쓰고 거의 많은게 돌아왔을무렵 우린 엄마를 집으로 퇴원시키기로 결정
난 출국해야 하고 직장은 결국 90일이 지나서 다시 복귀할수 없었지만....
동생은 자신의 직장을 일년이 지난 지끔까지 복귀 못하고 있다.
동생이 혼자서 병원과 집을 오가며 감당하기엔 넘 힘들기에.
감사하다.
돌아보니 엄마가 지금 이정도 회복된거도 다 은혜인거다.
말도 하고 혼자 걸어다니고 거의 모든걸하는.
그래도 아직 아주 100% 회복을 아니다.
엄만 스스로가 아직 못마땅해서 그러시지만서두.
맘이 많이 약해졌고 아직 어느 부눈은 기억 못하고 혼자서 뭘하는걸 겁내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모든게 넘치는 감사다.
동생에게도 너무나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