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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이모저모

외할머니

by 가을 가동 2013. 5. 1.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엄마도 우리딸램의  외할머니가 외었고.

나도 울 딸램의 아이들에게 외할머니가 되겠지.

나는 우리 손주녀석들한테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지.

 

울할머니는 언제나 머리를 뒤로 하고 비녀를 늘 꽂고 계셨다.

은비녀를.

근데 아프시고 나서부터는 머리를 짧게 자르셨던것 같다.

그게 아마 내가 대학 졸업후 같기도 하다.

내가 결혼을 하고 딸이 돌쯤 되었을떄 돌아가셨으니까 말이다.

그때 연세가 90 이 넘으셨었다.

 

내 기억에 남는 울 외할머니는 참으로 별나고 별난 분이셨다.

깔끔하기로 말이다.

그래서 늘 피곤한 우리 였다.

어쩌다 놀러 한번 오시면, 사실 놀러가 아니라 잔소리 하러 오시는줄 알았다.

늘 직장 생활을 하시던 엄마였기에 집에 오시면 정말 하라고 시키는게 많았다.

그래서 여동생과 나는 늘 방송국이라 별명을 붙였었다.

집에 일하는 언니가 있었어도 우리에게 온집안 청소는 물론 별별걸 다 시키셨던 기억이다.

 

특히 방학떄 오시면 이른 아침부터 방송은 시작 되었다.

새벽부터 깨워서 이불을 다 마당에 걸고 먼지털이로 다 털어서 햇빛을 쬐는것 부터 시작 되었다.

온 집안을 다 뒤져서 닦고 쓸고 털고.

아이고.

 

할머니가 웃는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늘 엄하게 계시던 표정 밖에는.

 

내가 점점 자라면서 할머니가 왜 그러셨는지 어렴풋이 그 맘을 알듯도 하다.

당신 딸을 위해 뭔가 하고 싶으셨던 거다.

사회생활을 하는 딸이 안스러워서 뭐라도 도와주시려고 우리에게 그렇게 방송을 하신거다.

할머니가 없어도 늘 그렇게 엄마를 도우라고 말이다.

한번 오시면 간장도 다리시고 고추장 같은것도 담고 하셨던것 같다.

마당에 연탄 두개정도 들어가는 일종의 화로 같은걸 놓고 그 위에 큰 그릇에 메주를 넣고 뭔가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 하셨던 기억이다.

또 이불 호청 빨래에다가, 어느정도 말려서는 접어서 다듬이 돌위에 올려놓고 연신 두드리셨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따박따박 소리는 게속 났다.

 

하루는 할머니의 방송에 너무 지친 나머지 숨어버렸다.

어린 맘에 작은 방에서 다듬이돌 위에 않아 천을 덮어쓰고 그냥 있었던거다.

근데 할머니가 계속 날 부르고 찾다가 결국 날 못찾으신거다.

얼마나 좋았던지.

 

그리 정정하던 할머니였다.

본인의 치아도 가지고 계셨다.

바느질하고 이빨로 실을 끊었으니까.

근데 치매가 시작되었다.

다리도 너무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고 앉아서 다니셨다.

치매가 시작된 후로는 가끔 울집에 오시면 새벽이고 뭐고 할거없이 내이름을 마구 부르며 방에서 나오셔서는 애들이 보인다고도 하고, 같이 밥먹자하는데 내려오지 않는다 하고, 야단을 치기도 하고 그러셨다.

맘이픈 일이 시작된거다.

나도 참 무심했었다.

삼촌댁에서 사셨는데 그리 잘 가게되질 않았다.

그 무심했던 가운데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돈과 명예로 가득찬 삼촌덕에 장례식도 기가 막히게 했지만 할머니는 왠지 편하지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잊혀진 할머니의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왜 생각이 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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